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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의 생애와 업적 - 박원순 시장을 추모하며..

by •••• 2020. 7. 10.

 

 

고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의 생애와 업적 - 박원순 시장을 추모하며..

 

어제 갑자기 박원순 시장님이 실종됐다는 기사를 접했다...

정말 믿어지지 않았고 설마... 무사히 웃으시며 돌아오실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은 박원순 시장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고 말았다.

 

애초에 정치가가 아닌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였던 그는 오세훈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다 서울시장을 그만두고 나갔을때 그 뒤를 이어 서울시장이 되었고 시장으로서는 아이디어와 열정이 넘쳤고 정말 많은 일들을 하며 3선을 연임하며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메르스때는 무능했던 대통령이 못하던 방역에 앞장서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큰 인상을 남겼고 차기 대권 유력주자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민주세력의 버팀목이었고 큰별이었던 분이라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박근혜 국정농단촛불집회, 검찰개혁 집회는 박원순 시장님이 여러모로 큰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집회였다.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문재인 대통령님 박원순 서울시장님

 

 

박원순 시장은 1956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어린시절을 겪었다고 알려졌고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유신반대 시위때문에 재적되었고 단국대에 재입학 했다.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약자를 대변 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간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인연이 있다. 애초엔 검사로 재직했지만 1년정도 후에 그만 뒀다고 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때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등을 변론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변호하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에 갈때 직접 변호 하기도 했다.

 

 

박원순은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을 이끈 시민단체의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역사문제 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여성국제전범법정울 포함해 인권단체들이 주최하고 국제적인 NGO들의 후원을 받은 민간 재판 이벤트에도 참여해서 일본 천왕을 처벌과 배상을 주장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설립에 큰 기여를 했고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았다. 16대 총선때 부패정치인 낙천낙선 운동을 하기도 했으며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을 벌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2001년에는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해 1% 나눔운동,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했다.

2006년 희망제작소를 출범시켰는데 21세기 신실학운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립되었고 간판문화개선, 지하철문화 개선, 여성들을 위한 수영장 생리할인제도, ATM수수료 사전안내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 기획단장을 맡아서 진상조사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원순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객원연구원으로 있을때 지하부터 7층까지 하버드대 도서관의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한다. 정독하지 못한 책은 복사 해 왔는데 복사기열과 냄새로 부인이 쓰러진 적도 있다고 한다.

 

 

2011년 재보궐선거로 나경원을 이기고 서울시의 35대 서울시장이 되었고 가장 처음 한 일이 초등학생 5,6 학년 무상급식지원이었다.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을 실현했고 2013년 전국철도노조 파업사건 당시 협상을 통해 파업을 철회하도록 했다. 2013년 정보소통광장 웹서비스를 통해 모든 시정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공공정보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열린시정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실천하였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곡하며 서울형 공공 어린이집 1000개소를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2015년 11월에는 일정자격을 갖춘 청년실업자들에게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복지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근혜탄핵집회때 박근혜퇴진 범국민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경찰서에서 물대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벨브를 잠그기도 했다.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3선 시장에 당선되었고 10년 혁명을 통해서 서울을 도쿄, 파리, 런던을 뛰어넘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하였다. 코로나 사태때도 적극적인 방역조치를 시행해 믿음을 주었고 해외에서도 박원순 시장과 방역대책을 의논하려고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최근 새로운 서울시의 새로운 정책으로 그린뉴딜을 발표했지만 그 다음날 갑자기 모든 일정을 취소했으며 7월 9일 돌연 실종되어서 다음날인 10일 오전 0시 1분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박원순 시장이 있었기에 유지 되었던 그린벨트 유지, 재건축 규제등의 기초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고 청년 취약계층 지원이나 도시재생의 동력이 약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박원순 시장이 추진했던 일들이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우리 시민들이 감시를 더 강화해야 할 것 같다.

 

 

평소 과로사가 소원이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워커홀릭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며 남은 재산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힘든중에도 여러가지 정책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비판도 받았지만 한 일보다 과소평가 되었던 분이었고 약자를 대변해 여러가지 많은 일들을 평생동안 열심히 실천해 오던 분이라 더 마음이 아프고 너무 안타깝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식은 사상 첫 서울특별시장으로 5일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고 한다. 일반 시민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서울시청앞 분향소도 설치한다. 발인은 13일로 예정되었다.

이런 분이 다시 있을 수 있을지...

왜 민주세력은 소중한 분들을 잃어야만 하는지..

노무현 대통령님 사망 이후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었다ㅠㅠ
괴로움 모두 잊고 평안하셨으면 좋겠다..

 

 

서울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서를 공개했다...ㅠ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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